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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중앙청과 기사 "시간이 품은 맛" 충청투데이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5-02-17 14:46
조회
90
시간이 품은 맛
오늘날 우리는 기술 발전으로 사계절 내내 신선한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조상들은 겨울철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워, 봄과 여름에 채취한 나물을 말려 보관하면서 정월대보름에 요리했다.

'묵혀 두었다가 먹는 나물'이라 해 '묵은 나물' 또는 '목나물'이라고 하며, 선조들은 제철에 수확해 말려둔 묵은 나물 가치를 묵은 김을 올해 유례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묵나물을 가장 자주 먹지 않는 요즈음에는 콩나물, 시금치, 숙주 등을 봄나물이라고 부르며 다만 사실 전통을 따르던 대로 묵은 나물, 즉 건나물을 먹는 게 맞다고 할 수 있다.



건나물은 생나물과 묘하게 다른 매력이 있다. 생나물은 신선함과 아삭한 식감이 돋보이며,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건나물은 건조 과정을 거치며 수분이 빠지고 맛이 농축돼 깊은 풍미와 고소한 맛을 지닌다. 시간이 쌓인 화학 작용이 배어 있다. 단순한 재료가 아닌 시간이 흘러간 내내 맛을 담고 있다. 게다가 건나물을 요리하는 과정에서도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불리기, 양념 배합, 볶는 과정 하나하나에 손길이 더해져야 깊은 맛이 생성된다.

이처럼 건나물의 매력은 단순히 저장의 편리함을 넘어선다. 이는 마치 인생의 경험과도 닮아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신선한 순간들이 반짝이는 기쁨을 준다면, 시간이 지나며 숙성된 경험들은 더 깊고 단단한 가치를 남긴다. 서툴렀던 순간들, 실패와 도전의 시간들이 쌓여 결국 우리만의 깊은 맛을 만들어낸다. 건나물 역시 시간이 기다림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질문하면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대답하는 ChatGPT와 함께 살아가고, 15초 내외의 쇼츠를 보며 빠르고 경쾌한 자극에 익숙해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빠른 답과 즉각적인 결과가 익숙한 흐름 속에서, 기다림과 숙성은 마치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난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경제 현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두드러진다. 고환율, 관세 전쟁, 불확실한 경기 상황 속에서 많은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이 빠른 수익을 찾기 위해 조급함을 느낀다. 그러나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묵은 나물이 시간을 견디며 깊은 맛을 품듯, 진정한 성장은 장기적 안목과 꾸준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견디며 서툴더라도 나아가는 용기다.

보름을 맞이해 묵은 나물을 한참을 불려 양념한 뒤, 고소한 참기름을 둘러본다. 그 위에 참깨 한 줌을 솔솔 뿌리면서 문득 생각한다. 나의 삶도 시간이 빚어낸 고유한 풍미를 지니고 있기를. 서툴고 부족했던 날들, 인내하고 기다렸던 순간들이 모여 언젠가 나만의 깊은 맛을 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 출처: 충청투데이 지면게재일 2025년 02월 13일 목요일
🔗 원문 링크: [충청투데이 원문 보기](기사 원문 https://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7799&_ga=2.12898871.1216181010.1739401152-1808860650.1739401151)